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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 우리는 그냥 파트너

남녀의 야릇한 신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고 그것을 음악으로 삼아 바닥에는 아무렇게나 벗어진 겉옷들과 속옷들이 나 몰라라 춤을 추고 있었다. 두 남녀는 마치 무대 위에 올라선 주인공들처럼 그들의 색기를 침대라는 무대 위에서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장면은 이미 절정에 도달한 상황이었다.

침대의 끼익 거리는 스프링 소리가 더욱 커질수록 남녀의 신음소리 또한 함께 커져갔다.

"흣, 저.. 전정국.. 흣... 아.. 하읏.... 읏...."

여자는 그녀의 주체할 수 없는 신음소리에 의해 말까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저 전정국이라는 이름을 반복해서 부를 뿐이었다. 허리놀림들이 격해질수록 그녀의 신음소리는 야릇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전정국을 더 꼴리게 하는데 충분한 재료가 되어주었다. 전정국은 현재 자신의 밑에서 황홀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미 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괴롭혀주고 싶었다.

"누나... 흡... 우리.. 우리 그냥.. 읏.. 사귀면 안 돼요..?"

전정국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귀에다 속삭였다. 전정국은 이런 그녀와 진심으로 인연을 만들고 싶었다. 그녀와 그의 관계가 연인으로 이어지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이런 그녀와 매일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섹스만이 아닌 평생을 말이다.

그러나 그가 예상한 대로 그녀의 대답은 그를 슬프게끔 하였다.

"흣... 우린....하앙... 우린... 섹스 파트너야... 전정국... 흣.."

그녀는 가벼운 조소를 입가에 띄우며 전정국의 볼을 가녀린 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전정국은 심각하게 고려하는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의 마음을 별수롭지 않게 대하는 그녀가 미웠다. 그러나 그녀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탓에 이 미움이라는 마음마저 그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전정국은 그녀의 차가운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 격렬해진 행동을 통해 그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런 그의 마음을 그녀는 읽었는지 피식 웃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우리는... 그냥... 흐읏.. 파트너야....."

그렇게 한동안 방안은 두 남녀의 신음소리만 들려왔다.

그녀와의 한바탕이 끝나고 전정국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샤워 소리에 맞춰 몹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매일을 함께하는 밤, 그리고 그녀와 그 자신을 쏙 빼닮은 아기, 그녀와 함께하는 사랑스러운 가정. 그러나 전정국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때 침대 위에 있던 전화기의 진동소리가 전정국을 허상에서 깨어나게끔 하였다. 다름 아닌 그녀의 전화기였다. 전정국은 액정 위로 뜨는 발신자를 보자마자 미간에 주름이 잡힐 정도로 깊은 인상을 썼다. 다름 아닌 그녀의 현 남자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이다. 물론 무엇 하나 티를 내지 않는 그녀의 성격 때문에 '남자친구, '자기'라는 호칭이 표기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전정국은 번호를 보자마자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다름 아닌 그와 가장 친한 친구, 김태형의 전화번호였기 때문이다.

전정국과 김태형은 소위 말해 불알친구였다. 무엇을 하든 항상 같이 하였고 심지어 형제라고 오해받을 만큼 둘은 항상 함께 해왔다. 그러나 그녀가 나타난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말하자면 길지만 그녀는 전정국의 진실된 사랑을 그저 섹스로 받아치고 진실된 사랑은 김태형과 함께하고 있었다.

전정국은 울리는 전화기를 손에 집었다. 당장 초록색 버튼을 옆으로 넘겨서

'그녀는 이미 나랑 몸을 섞은지 오래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하나 때문에 그의 친구와 그녀를 다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

우리는 그냥 파트너지...

오늘도 전정국은 담배 한 개피를 입에 물고 불을 지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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